한계레 신문에 있던 글이라고 하는군요. 연구소 게시판에서 가져왔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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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 젊은 친구에게 그 자리를 해줄라고 재단 이사장에게 몇 년 동안 열심히 공을 들였지. 인사도 크게 했지. 나중에 그 이사장이 밀려난 바람에 공든 탑이 무너진 셈이라! 난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평소에 잘 통하는 내 선배 한 분을 통해서 그 젊은 친구를 딴 데에 보냈소. 힘들지 않았냐고? 그럼, 몇 년 걸렸지. 그래도 그 젊은 친구가 나 말고 어디 믿을 구석이 있나? 내 딴에도 역시 제자야말로 재산이야!”

이 이야기는, 한국에 온 직후에 학계의 한 `원로급' 교수와의 술자리에서 들은 `성공담'이다. 술을 못하는 필자에게는 그 주연에 간 것은 고역이었지만, 백 권의 책보다 한국 사회의 진실을 더 정확하게 보여 준 그 `원로'의 취담을 들은 데에 대해서 지금도 하늘에 감사를 보낸다.

`원로'의 `성공담'을 열심히 듣고 있었던 그 `가신'들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, 필자는 뚜렷하게 봤다. 그들이 술자리에 `자의반 타의반'으로 오는 대가를 언젠가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기분이 꽤 좋아진 것 같았다. 그런데 필자는, `성공적으로' 취직된 `젊은 친구'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수록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.

당신을 `재산'으로 아는 `보스'가 당신을 위해서 몇 년 동안 `열심히 공을 들일' 정도였다면, 당신이 그 `보스'에게 여태까지 들여 온 `공'은 어느 정도였을까? 단순히 찾아 갈 때마다 몸을 90도로 구부리고 술자리마다 `깍듯이' 모시는 정도였을까? 아니면, 그 `원로'의 이름으로 돼 있는 저서와 역서의 상당 부분이 당신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을까? 그 `원로'외에 `믿을 구석이 없다'는 당신이, 그 `원로'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의 책을 자기 논문에서 인용하고 싶어도 철저한 자기검열을 단행할 때 심정이 어땠을까? 꼭 자기배신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? 배타적인 `학통 잇기'로 전락한 공부를 아예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? 모든 굴욕을 10여 년에 걸쳐서 참아 온 대가로 취직이 드디어 됐을 때, `은인'을 향한 `영원한 충성'을 무슨 표현으로 약속했을까?

이제 `은인'이 당신을 매개로 삼아 다음 세대의 충복들에게 `충성의 대가'를 주려고 할 때마다, 그들의 취직을 성사시켜주느라 당신은 어느 정도의 에너지와 시간을 바쳐야 할까? `그 분 모시기'에 바쁜 당신이, 과연 그 와중에 만족할 만한 공부를 할 시간이 있었을까? 시간이 비록 있었다 해도 `보스'가 찍어 내리는 대로 해야 했다면 과연 만족스러웠을까? 그리고, `보스'의 `눈도장'을 받으려는 `충성 경쟁'에서 당신이 혹은 당신의 동료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아야 되지 않았을까?

결론적으로, `적자생존'의 `상류' 사회에서 정의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 당신은, 이제 `죽을 고생'의 대가로 `귀족의 대열'에 합류한 뒤에 당신과 달리 `성공'하지 못한 `부적격자'에 대해서 과연 최소한의 애정과 관심을 가질 것인가?

분명히하고 싶은 것은 필자가 `원로'와 그 제자들을 비판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. 사적인 네트워크로 돌아가는 연줄 사회에서 많은 경우에는 `웃어른 모시기'를 거부한 사람에게 이민밖에 남은 선택이 없다는 사실을, 필자는 잘 알고 있다. 부끄러운 이야기지만, 필자도 한국에서 살았을 때 여러 차원에서 커넥션 논리의 수혜자였다. 다만, 취직이 어려워진 만큼 `높으신 분'의 눈도장을 받으려는 `충성 경쟁'이 과열되는 현재의 시점에서, 시혜·수혜의 논리로 움직이는 우리 사회의 `이면의 진실'에 대해서 반성의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이야기일 뿐이다. `자기 사람'을 `심어준' 것도, 몸을 구부린 대가로 `잘 된' 것도 자랑이 아닌 수치, 반성의 대상이 돼야 한다.

박노자/ 오슬로 국립대 교수